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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즐거운 편지

초등학교 광희의 편지

by 진부령편지 2021.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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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등학교(국민학교) 생활에는 중요한 두 친구가 있었다.
아버지의 친구 딸이었던 성희(가명)와
오늘 편지를 통해 만날 광희이다.

성희는 장사를 하시던 부모님 밑에서 유복하게 자라는 맏딸이었다.
가끔 성희의 집에 놀러가면 성희 어머니가 직접 빵을 구워 주셨다.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 말에 오븐이 있고
빵을 구울 줄 아는 멋진 엄마였다.
성희는 자기만의 방이 있었고
내가 놀러가면 신기한 물건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우리는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서로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고
엄마를 통해서 성희가 어느 학교로 진학했다든지, 어느 대학에 들어갔고, 결혼을 했고, 이민을 갔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광희는 우리집에서 학교로 가는 3km가 정도의 긴 여정 사이에 집이 있었다.
초등학생시절 나는 매일 1시간 이상을 걸어 학교에 갔다.
논두렁과 밭을 지나 슈퍼와 공장들이 나타나는 초입 즈음에서 나는 광희를 만나 학교를 갔다.
처음 광희의 집에 간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광희의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당이 없고 바로 거실이 나타났다.
그 당시 우리집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이 있고
마당을 지나 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구조였기에
처음 갔던 광희의 집은 무척 낮설었다.
당시를 회상해보면
광희의 아버지는 섬유공장을 운영하셨는데
대문을 열고 우리가 들어선 곳은 공장의 사무실이었고
광희의 주거 공간은 그보다 더 안에 있었다.
그 '거실'에는 아주 큰 어항과 검은 쇼파가 있었는데
넓적한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보고 나는 화들짝 놀랐었다.

광희와 나는 편지를 자주 주고 받았다.
특히 방학이면 서로 만날 수 없어 우표를 고이 붙여 몇자 적지 않은 편지를 보내곤 했다.
우체부 아저씨가 우리집에 들러 내 이름이 적힌 편지를 주고 갈때의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곰팡이 대참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광희의 편지는 연필로 쓴 것이 대부분이었다.

'' 보내준 편지 잘 받았어"로 시작하는 5학년 단짝 친구의 편지를 보며
'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지'하고 마치 초등학생 시절로 다시 돌아간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너와 나'를 그린 깜찍한 그림을 보자니 웃음도 나고...
우리 모두는 어린이 시절을 지나왔고
그때도 고민이 있었고
나름의 행복을 가지고 있었다.

광희가 어디에 있든지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바래본다.

내가 반달 머리를 저렇게 위로 잘 묶고 다녔나보다.^^
1989년 10월 5일 광희의 편지. 당시 많이 쓰던 작은 편지지이다.
나도 어릴때는 엄마가 차별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내가 실수해서 꾸중을 들은 것이었고 나를 혼낸 어머니도 맘이 편하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속상. 어쨌거나 편지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나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지.
나에게도 '우정 변치 말자'고 손가락을 꼭 걸던 친구가 있었지.
세상 마냥 즐겁고 단순하던 시절이 있었지.
그 속에서 다툼도 많았지.
하지만 지나고보니
모두 행복했던 순간들이었지.
좋은 추억을 남겨준 광희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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