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세이/즐거운 편지

99.12.6 엄마가

by 진부령편지 2021. 8. 7.
반응형

대학에 들어가면 해외에 나가보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내가 대학을 가던 해에 IMF가 터졌고
대학만 가면 미래가 보장되던 시대는 갔다.
나는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함께 가려고 했던 작은언니는 대사관 입국심사에서 탈락하여 가지 못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미국에 가려면 비자를 따로 받아야했고, IMF이후 한국 사람들이 미국을 가는 심사는 더 까다로워졌었다.
혼자 뉴욕으로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학원을 다니는 나를 생각하니 마음이 에인 엄마의 편지가 종종 나에게 도착했다.
나는 외로웠고 힘들었지만 그때는 견딜만 했다.
너무 어려서 목표를 정하지 않은 도전이 쉽게 끝나리라는 것도 몰랐다.

네 자녀를 키우느라 항상 박스와 짝으로 과일과 생선을 사오던 아빠
손에 물 마를 틈 없이 살아온 엄마
자녀들이 모두 자라 집을 비우면서 느끼는 허전함

엄마의 편지는
고된 식당 아르바이트 마치고 팔이 아파 새벽잠을 깨던 나의 위로였으며
돌아갈 곳이 있고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는 희망이었으며
실패해도 괜찮다는 여유의 원천이었다.

우리집 과일귀신이었던 나는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난 후
"니가 없으니 과일이 썩는다"는 멘트를 가장 많이 들었다.



**아 잘 있었니?
이번에는 엄마의 소식이 늦었구나.
이제는 날씨도 추워지고 몸조심 해야겠다.
올겨울 추울때는 우리 **이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모르겠구나.
우리 집에는 나무를 많이 쌓아 놓았으니까 얼마든지 따듯하게 지낼 수 있지만...(우리집은 화목/기름 공용 난로를 사용했다)
**아 엄마는 따듯한 마음이나 띄울 수 밖에 없구나.
착한 내 딸이 어느 하늘 아래서나 열심히 건강하게 살아가길 빌면서 말이야.

**아 우리집 마당 이제는 다 치우고 포크레인으로 고르고 기목나무를 일곱 그루 심었어.
팔공산에 벌을 가져다 두던 그 집에서 다섯 그루를 주길래 가져오고 매실나무도 네 그루나 주었어.
더 사려고 나무시장에 갔더니 기목나무 한 그루에 이십 만원이나 달라고 하기에 할 수 없이 가창에 가서 작은 나무 두 그루에 오만원 주고 사가지고 심었어.
큰 나무를 심으니 우리집도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오늘 아침에도 새로 심은 나무에 아빠와 같이 물을 주고 했어.
**이가 올때면 푸른 잎이 잘 자라고 있을거야. 평상을 놓고 놀 수 있을 정도로.
**이가 없는 동안 그 감(이전에 사다 놓았던 감)도 다 먹고 영천장에 갔더니 올해는 포도가 싸길래 세 상자 사가지고 왔지.
한 상자 사천원 밖에 안하더군. 올해 포도는 모두가 다 쪼그라진 포도였어. 그러니까 가격이 싸더구나.
포도를 냉장고 가득 채워놓고 먹으니 우리 진영이가 **이 "누나 있으면 잘 먹어줄텐데..."
11월 2일날 영천 시장에 김장고추 사러 가서 약간 흠이 있는 사과를 한 상자 사가지고 왔어 팔천원에.
또 진영이가 "우리집 사과순이 누나가 미국을 갔는데 누가 먹으려고 사과를 이렇게 많이 사가지고 왔냐"고 했다.
진영이나 하나씩 먹고 아빠 엄마 후식으로 하나씩 먹는거야.
진희는 아예 먹을 시간이 없어. 워낙 바쁜 아이니까. 아침에 일찍 출근하면 일찍 오는 날은 10시 반 아니면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오니 먹을 시간 없어.
미선이는 10월 15일 친구들과 같이 잠시 왔다가고 11월 27일에 왔다가 28일에 친구 결혼식 보고 갔어.
미선이는 삼척 가고, 진희는 직장 가고, **이는 미국 가고, 진영이는 학교 가고.

**아 지난번 저쪽집을 지으면서 죽어가는 국화를 우리 개집 옆에 심어놓은 것 알지? 거기서 예쁜 꽃이 피었어. 잘 말려서 한송이 띄워줄께.(엄마는 편지 사이에 말린 국화를 넣어서 보내셨다)

아빠가 오늘 친구가 놀러가자고 한다면서 가버리고 없어. 나 혼자 일을 할 수도 없고 해서 나도 **이에게 편지쓰고 노는 거야. 진희도 아빠 없을때 혼자 청승맞게 일하지 말라고 야단이기에, 오늘 처음 낮에 **이에게 편지 쓰는거야.
**아 엄마도 나가서 김장준비하고 만두나 만들어 볼까 한다.
열심히 만들어도 먹을 사람이 없어 몇날 며칠을 냉장고를 맴돌지만,
**이 미선이가 없으니 우리집도 먹을 사람도 없거니와 집안이 영 허전해.
**아 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가고 여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엄마는 우리 **이에게 우리집 소식을 띄워 줄께.
학교는 어떻게 다니고 있니?
돈 달라는 말이 없으니까 더 걱정이 되는구나.
사실은 줄 돈도 없지만 내 딸이 먼 곳에서 고생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나도 가슴이 에이는구나.
내 딸은 잘 있다 오리라 믿지만 혹시나 라는 생각에 .
엄마에게 부담 갖지 말고 돈 떨어지면 미리 미리 전화해라 알았지?
건강 잘 챙기고 다음 소식 또 전할께
99.12.6 엄마가

편지를 접고 '통장 번호 꼭 보내주기 바란다'라고 쓴 엄마의 간절함. 혹시나 먼 이국에서 밥이라도 굶을까 걱정이 된 엄마의 마음이 잘 느껴진다. 그때는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내 삶이 더 간절해서 엄마의 마음을 안심시켜주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편지를 읽으니 지금의 나와 내게 편지를 쓰던 엄마의 나이가 그다지 차이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송함이 밀려온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엄마가 사이에 넣어준 국화는 편지 사이에서 가루가 되고 말았다. 살면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추억, 우리를 지탱하는 작지만 소소한 것들.
반응형

'에세이 > 즐거운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등학교 광희의 편지  (0) 2021.08.07
즐거운 편지  (2) 2021.08.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