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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즐거운 편지3

99.12.6 엄마가 대학에 들어가면 해외에 나가보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내가 대학을 가던 해에 IMF가 터졌고 대학만 가면 미래가 보장되던 시대는 갔다. 나는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함께 가려고 했던 작은언니는 대사관 입국심사에서 탈락하여 가지 못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미국에 가려면 비자를 따로 받아야했고, IMF이후 한국 사람들이 미국을 가는 심사는 더 까다로워졌었다. 혼자 뉴욕으로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학원을 다니는 나를 생각하니 마음이 에인 엄마의 편지가 종종 나에게 도착했다. 나는 외로웠고 힘들었지만 그때는 견딜만 했다. 너무 어려서 목표를 정하지 않은 도전이 쉽게 끝나리라는 것도 몰랐다. 네 자녀를 키우느라 항상 박스와 짝으로 과일과 생선을 사오던 아빠 손에 물 마를 틈 없이.. 2021. 8. 7.
초등학교 광희의 편지 나의 초등학교(국민학교) 생활에는 중요한 두 친구가 있었다. 아버지의 친구 딸이었던 성희(가명)와 오늘 편지를 통해 만날 광희이다. 성희는 장사를 하시던 부모님 밑에서 유복하게 자라는 맏딸이었다. 가끔 성희의 집에 놀러가면 성희 어머니가 직접 빵을 구워 주셨다.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 말에 오븐이 있고 빵을 구울 줄 아는 멋진 엄마였다. 성희는 자기만의 방이 있었고 내가 놀러가면 신기한 물건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우리는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서로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고 엄마를 통해서 성희가 어느 학교로 진학했다든지, 어느 대학에 들어갔고, 결혼을 했고, 이민을 갔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광희는 우리집에서 학교로 가는 3km가 정도의 긴 여정 사이에 집이 있었다. 초등학생시절 나.. 2021. 8. 7.
즐거운 편지 나에게는 보물상자가 있다. 그 보물 상자는 5년에 걸친 유학생활에서도 살아남았고 집을 떠나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에도 결혼을 하고 4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에도 깨끗하게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헌데 지난 여름 두달동안 쉼 없이 비가 내린 휴유증인지 창고에 있던 나의 보물상자는 습기와 검은 곰팡이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다 나의 보물상자는 바로 '편지함'이다. 옛 노래에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라는 가사가 있었는데 '편지를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라고 바꿔 부르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먼저 오랜 사진들은 녹아내려 여러장이 들러붙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었고 수성펜으로 쓴 편지들은 글씨가 모두 지워져 백지가 되어 있었다. 편지마다 핀 검은 곰팡이를 털어내고 그나마 읽을 수.. 2021.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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