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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삶의 여정

by 진부령편지 2021.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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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 파울로 코엘료

 

얼마 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십 년간 여러 책임과 역할에 묶여 옴짝 달싹 할 수 없었습니다. 인기가 어찌나 많은지 집을 비우고 어딘가를 며칠씩 떠난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저처럼 인기가 솟구치는 몇몇 아낙들이 한 번은 꼭 함께 여행을 가자며 여러 해 동안 모의해 오던 끝에 올해 결실을 보았습니다.

 

여행을 가는 것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 한 번도 얼굴을 맞대지 않고 여행 계획을 하자니 어느 것 하나 쉽게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여행을 가서 대부분의 식사는 길거리 혹은 야시장에서 먹었고, 많은 시간을 걷고 지하철역을 찾아다니는데 사용했습니다. 혹시나 하고 가져간 우루사를 다 같이 나눠 먹고는 투약여행이라고 깔깔대며 지치는 몸을 일으켰습니다. 계획된 범위 안에서 남편과 자녀들에게 줄 작은 엽서와 먹거리, 이웃에게 부탁받은 차를 사면서 떨어져 있는 가족과 이웃을 떠올렸습니다. 때때로 튀어나오는 서로 다른 욕구들을 조정하는 것도 예민한 문제였습니다.

 

그렇게 짧은 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여행이 나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책 [알레프]에서 우리의 삶은 태어나서부터 죽기까지 계속되는 하나의 여행이야. 경치가 변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변하고, 필요로 하는 것도 달라지지만, 기차는 앞으로 나아간다네. 인생은 기차지 기차역이 아니야.라고 썼습니다. 저는 이 말을 삶은 여정이다.”라고 이해하였습니다.

 

세상은 제게 관광하는 삶을 권합니다. 멋진 것을 보고,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것을 먹고, 나중에 누군가에게 내가 거기에 가서 이러저러한 것을 보았네. 유명한 맛집을 다녀왔네.”라며 보여줄 사진을 찍는 삶 말입니다. 많은 물질을 가지고, 높은 지위에 앉고, 많은 사람을 발아래 두는 삶이야 말로 화려한 크루즈 관광과 같은 1%의 고귀한 인생이라고 속삭입니다. 저라고 왜 맛있는 음식과 멋진 잠자리가 싫겠습니까? 여행하는 동안 편안한 숙소와 차량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진정 원하는 삶은 여정이 있는 삶입니다. ‘여정은 화려한 결과물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하루하루 걸어온 발자취가 길게 이어져 숲에 길을 내는 것과 같이 그 모든 과정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이 나에게 주는 의미이며 나의 내적인 성장입니다. 함께하는 여행에서 우리는 계획적으로 소비해야 했고, 고단하게 여행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더 솔직하고 친밀하게 다가설 수 있었습니다. 나의 부족함도 보게 되었고, 상대의 장점을 배워보려 애쓰기도 했습니다. 계획하고 조정하면서 여행에 지혜를 더하게 되었고,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서 한순간도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또 동시대를 나와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삶과 저의 삶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생명의 경이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어느날 죽음이 문턱에 이르러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게 될 때, 혹은 신 앞에 섰을 때 신이시여 저는 삶을 관광하다가 왔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이 말은 삶 속으로 뛰어들지 못했고, ‘지금을 살아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신이시여 제 삶을 여정을 보십시오.”라고 말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살아가며 제가 겪은 곤란과 실수, 이웃과 나눈 위로와 사랑, 그리고 웃음과 눈물, 할 이야기가 많을 것입니다.

 

실수투성이이고 부족한 제 삶의 여정이 사랑하는 자녀들의 삶에 작은 오솔길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누군가 어렵고 힘든 때에 제 삶의 여정에서 지혜를 얻어 갈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화려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관광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함께 나눌 이야기가 있는 삶의 여정에 좀 더 집중해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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