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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역지사지

by 진부령편지 2021.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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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초등학생인 큰 아이는 4살이 되던 해부터 무엇을 유심히 볼 때마다 눈을 치켜뜨고 보았습니다. 날마다 이유 없이 머리가 아프다고 했지만 특별한 질병은 없었기에 저는 그것을 심인적 요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컴퓨터로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던 아이의 왼쪽 눈동자가 오른쪽으로 몰려가고, 오른쪽 눈동자는 그대로 앞을 쳐다보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근 종합병원 안과에서 정밀검진을 한 결과, 아이의 눈이 선천적으로 좌안은 원시, 우안은 근시였습니다. 원시는 자라면서 좋아지지만, 근시는 자라면서 나빠지는 눈이므로, 두 눈의 시력차가 심해서 약한 눈인 우안은 영구적으로 시력을 잃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왈칵 눈물이 쏟아지면서, 그동안 서로 다른 눈으로 초점을 맞추기 위해 애쓰느라 날마다 머리가 아팠을 아이를 생각했습니다.

 

 정기적인 검진과 눈가림 치료도 쉽지 않지만 더 만만치 않은 것은 아이의 심리적인 어려움이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어린 나이에 혼자 안경을 끼고 있으니 친구들이 못생겼다고 놀렸다며 우는 날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만나는 어르들은 걱정해 주시느라고 벌써부터 눈이 그러면 어떡하니? 텔레비전 많이 보면 안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는 아이는 어른들의 말이 억울한 질책으로 들렸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한쪽 눈은 커 보이고 한쪽 눈은 작아 보이는 안경렌즈의 미세한 차이를 가지고 아이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끝없이 아이의 시력에 대해 타인에게 설명해야 했습니다.

 

 지난 5월 진부령으로 이사를 오고 아이는 흘리분교에서 날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6명의 전교생들이 연극을 하고, 체육을 하고, 고추를 심고, 물고기를 잡으며 즐겁게 지냅니다. 이사 후 학교에 다녀온 첫날 아이는 엄마 우리는 왜 이렇게 행운이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 언니들이 샤워할 때 내가 안경을 벗으면 자꾸 노려보는 것 같대. 내가 그게 아니고 시력이 나빠서 그렇다고 하는데도 언니가 안 믿어.”라며 아이가 다시 눈물을 보였습니다.

 

 흘리분교에는 두 분의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 중 한분의 별명은 알럽티쳐인데, 아이들이 아무리 성가시게 해도 알럽티쳐라는 말을 들으면 아이들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 지은 별명이라고 합니다. 지난 주 개학을 하고 알럽티쳐는 아이에게 가림패치를 여러 개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알럽티쳐는 저에게 6명의 아이들과 알럽티쳐가 함께 가림패치를 하고 있는 사진을 찍어서 보내 주셨습니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엄마 선생님이 내 눈은 특별하다고 하셨어요. 좀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나중에 자라서 어른이 되면 이 눈이 세상에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언니 오빠가 매일 패치를 하는 내가 정말 대단하데요.”라며 좋아했습니다. 알럽티쳐가 좋은 역할이 무엇인지는 말 해 주지 않으셨답니다. 왜냐하면 그게 뭔지는 알럽티쳐도 아직은 모르기 때문이라고 아이는 친절하게 저에게 설명해 줍니다. 아이는 이제 학교에서 누구에게도 자신의 어려움을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전교생이 모두 한 쪽 눈이 약한 아이의 어려움을 몸으로 느껴 보았기 때문입니다.

 

 방긋이 웃는 아이를 보면서 제 마음도 한없이 기뻤습니다. 한 아이만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모두 함께 몸으로 나누면서 흘리분교의 전교생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큰아이 역시 사랑받는 이웃이 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어려움을 겪는 상대에 대한 진정한 이해란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상대방의 ‘다름’은 장애가 아니며, 관계의 장해로 작용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각자 모두 다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통로입니다. 혹여 나에게 어떤 장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아름다운 피조물입니다. 또 혹여 상대에게 어떤 장애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장해로 여기지 말고 다름을 이해하고 함께 겪어 주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사랑스러운 서로의 이웃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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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쓴 칼럼을 수정하여 게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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