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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신남돈까스 인제에서 맛있는 돈까스집 소개합니다. 시외버스 신남 주차장 근처에 있는 '신남 돈까스' 위치 애매하고 주변에 군인들을 제외하면 누가 이 돈까스 가게에 오나 싶었습니다. 그래도 맛집이라니 4인가족 함께 출동해보았습니다. 신남은 인제에서도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고 군인들과 농사를 짓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저도 서울 다녀오는 길에 시외버스를 타면 완행으로 모든 정류장에 정차할때 가끔 들리는 곳이 신남역입니다. 가게 찾아가다보면 여기에 무슨 식당이 있나 싶은 생각이 산촌에 사는 저도 듭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동네로 들어가면... 제대로 찾아간게 맞네요. 가게 일하시는 분이 네명입니다. 주방에서 주문을 받아 바로바로 돈까스를 만들어 튀기는 젊은 청년 두 명이 고기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 났습니다. 홀.. 2021. 8. 14.
눈 내리는 날 일기예보에 따르면 진부령에는 벌써 12센티의 눈이 내렸고, 실제로는 고도에 따라 내린 눈의 양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날마다 언제 눈이 오는 것이냐고 묻던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평소에는 아침마다 두 아이를 깨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잠이 깨면 엄마를 불러서 다리를 주무르라고 한다든가, 안고 거실로 나가달라고 한다든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저를 불러서 시중들게 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눈이 내리던 날 아침에 “눈 왔다.”한마디에 벌떡 일어나서 스스로 옷을 골라서 입고 잠바를 미처 잠그지도 못하고 마당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눈이 내리자 큰 아이가 다니는 흘리 분교는 1박2일 캠프를 시작했습니다. 큰 아이는 눈싸움을 하기 위해서 잠바와 스키바지를 여벌로 챙겨서 학교에 갔습니다.. 2021. 8. 10.
여유있는 사랑 주말에 하루 종일 집에서 놀기 지루해 하는 두 아이를 데리고 화진포 바닷가로 모래놀이를 나갔습니다. 주중에 내리던 비가 그치고 어제 오늘 날씨가 좋기도 하거니와, 집에만 있으면 둘이 다투는 일이 더 많기 때문에 긴 시간 놀아야 할 때는 서울에서도 항상 집 밖으로 나가곤 했었습니다. 바닷가에 아무도 없는 것 아니냐며 둘째 아이가 차를 타고 가는 내내 걱정을 하였습니다. 도착해보니 다른 아이들 서넛이 이 추운 날씨에도 두 다리를 동동 걷고 파도를 따라 뛰어다니며 모래성을 쌓고 있었습니다. 큰아이는 모래놀이만 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기어이 두 다리를 걷고 바닷물에 발을 담갔고 물에서 넘어져 엉덩이가 젖었습니다. 작은 아이는 준비해 간 장난감 덤프트럭으로 모래 위에 긴 도로를 그리며 즐겁게 놀았습니다. 준비해 .. 2021. 8. 10.
좋은 인연 분주한 아침에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나가보니 오늘 아침 제대를 하는 군인이 두 손 가득 과자며 비타민 등의 선물을 들고 서 있습니다. 전역을 하고 부대를 떠나면서 저희 가족에게 인사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들렸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좋은 인연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며 두 아이에게 선물을 전해 주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서로에게 좋은 인연으로 기억될 수 있다니 참 감사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렵고 힘든 순간에 마치 선물처럼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된 일들이 떠오릅니다. 오랜 시간 관계를 지속해 온 “좋은 인연”이 있는가 하면, 아무 공로 없이 기적처럼 다가오는 “좋은 인연”도 있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한 해를 즐겁게 대학생활을 하던 어느 날 저는 지도를 펼쳤습.. 2021. 8. 7.
99.12.6 엄마가 대학에 들어가면 해외에 나가보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내가 대학을 가던 해에 IMF가 터졌고 대학만 가면 미래가 보장되던 시대는 갔다. 나는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함께 가려고 했던 작은언니는 대사관 입국심사에서 탈락하여 가지 못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미국에 가려면 비자를 따로 받아야했고, IMF이후 한국 사람들이 미국을 가는 심사는 더 까다로워졌었다. 혼자 뉴욕으로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학원을 다니는 나를 생각하니 마음이 에인 엄마의 편지가 종종 나에게 도착했다. 나는 외로웠고 힘들었지만 그때는 견딜만 했다. 너무 어려서 목표를 정하지 않은 도전이 쉽게 끝나리라는 것도 몰랐다. 네 자녀를 키우느라 항상 박스와 짝으로 과일과 생선을 사오던 아빠 손에 물 마를 틈 없이.. 2021. 8. 7.
초등학교 광희의 편지 나의 초등학교(국민학교) 생활에는 중요한 두 친구가 있었다. 아버지의 친구 딸이었던 성희(가명)와 오늘 편지를 통해 만날 광희이다. 성희는 장사를 하시던 부모님 밑에서 유복하게 자라는 맏딸이었다. 가끔 성희의 집에 놀러가면 성희 어머니가 직접 빵을 구워 주셨다.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 말에 오븐이 있고 빵을 구울 줄 아는 멋진 엄마였다. 성희는 자기만의 방이 있었고 내가 놀러가면 신기한 물건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우리는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서로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고 엄마를 통해서 성희가 어느 학교로 진학했다든지, 어느 대학에 들어갔고, 결혼을 했고, 이민을 갔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광희는 우리집에서 학교로 가는 3km가 정도의 긴 여정 사이에 집이 있었다. 초등학생시절 나.. 2021.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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